들리지 않는 비명과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빛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는 기록되지 않았고, 그러므로 그것은 역사가 되지 않았다. 잊힌 시간은 그저 잊혀 갈 뿐이다. 그런 것들은 도처에 널려있다. 눈에 보인다고 해서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보지 않는 것도 있다. 최요한은 자주 걸었고, 자신이 본 것을 궁금해했다. 의문은 또 다른 걸음으로 이어졌고 이동을 일으켰다. 소요산 낙검자 수용소, 동두천시 보산동, 고산동 뺏벌마을, 군산 아메리칸 타운, 상패동 무연고 묘지, 그리고 이어진 장소와 장소들. 

 2017년 작가가 소요산 일대를 걷다 궁금증을 갖고 찾아보게 된 건물은 낙검자 수용소였다. 1960년대 초, 미군과 성매매 여성들 사이에서 성병이 크게 유행하자 미군 측에서 한국 정부에 관리를 요구했고 주한미군 기지촌 성매매 사업 종사 여성들의 성병 관리소를 목적으로 지어진 곳이다. 성병에 대한 검사와 치료를 담당하는 기구였으나 정부에 의해 비윤리적 운영과 강압/강제적인 입소로, 일명 ‘토벌’이라 일컬었던 악명 높은 연행이 이어지던 곳이었다. 보건증이 없거나 검진을 받지 않은 여성, 혹은 미군이 성병이 있다고 추측/지목한 여성은 낙검자로 분류되어 입소 되었는데 과도한 페니실린 주사의 부작용으로 과민성 쇼크사는 물론, 괴로움에 스스로 옥상에서 몸을 던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당시 기지촌의 여성들은 한국전쟁 이후 생계유지를 목적으로 일자리를 찾던 중 인신매매, 직업 사기 등의 이유로 끌려와 성매매의 피해자가 대부분이었다. 일명 ‘언덕 위의 하얀 집’(동두천시 소요산 낙검자 수용소)에 ‘토벌당한’ 여자들이 실려 오면 쇠창살이 설치된 수용소에서 최소 4일부터 한 달 이상을 감금당했다. 

 성매매로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자 정부에서는 성병 관리소를 적극적으로 운영했고, 1962년 6월, 미군기지 인근 104개 특정 (윤락) 지역을 지정하며 해당 지역은 성매매 단속을 제외했다. 1969년 미군감축계획(닉슨 독트린)이 발표되자 미국과의 관계를 우려하여 ‘기지촌 정화 운동’을 펼치며 환경개선과 함께 동두천, 의정부, 파주, 평택, 군산 등 전국 곳곳에 대대적인 확장을 이어갔다. 같은 해 제정된 전염병 예방법 시행령 제4조에서는 기지촌 여성을 ‘위안부’라고 공식 문건으로 표기하며 철저한 관리를 진행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여성의 몸은 어떻게 국가에 의해 통제되며 침해당해 왔는지. 국가적으로 기지촌 여성을 일컬어 ‘달러벌이 산업 역군, 민간 외교관이자 애국자’라 칭하며 성매매를 독려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애국 교육’이 실시되던 때였다. 국가의 성실한 관리와 열심을 다한 방관으로 1980년대까지, 기지촌 여성 인권 침해가 가장 극심한 시기가 이어졌다. 참으로 밝은, 밤이었다.

 1992년 경기도 동두천시 기지촌의 주한미군 육군 이병 케네스 마클이 한국인 여성 윤금이를 살해한 사건에서 잔혹한 현장이 공개되며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Status of Forces Agreement) 개정 및 철수 투쟁, 불평등한 사법처리 문제가 환기되었다. 일부 보수층에서는 개인적 문제로 축소하며 우호적 한미관계 유지를 주장하기도 하여 논란이 되었으나, 한미 SOFA 개정에 따른 목소리가 높아졌다. 정부 주도로 공식 설치되어 30~40년간 운영되었던 지역별 낙검자 수용소는 이후 폐허의 공간으로 남았다. 2013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기지촌 여성 정화대책(1977, 국정감사 작성)이 공개되며 2014년 기지촌 여성 120명이 국가배상 소송을 진행하여 2018년 2월, 국가 방조를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이어 2014년 18대 국회에서 관련 법률안이 발의되었으나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되어 아직까지 진전이 없는 상태이다.

 반면 1990년대 중 후반 이후부터는 여성의 성을 매개로 제도화된 해외이주노동에 의해 필리핀 여성이 한국 기지촌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보산동 클럽에서는 여전히 ‘쥬시걸’이라 불리는 필리핀 여성들이 주스를 판다. 국내 성매매 여성의 숫자는 줄었으나, 외국인 계약 노동자의 형식을 취하며 ‘비(非)법, 편법, 합법으로 위장, 법망을 피하기’로 점철된 착취적 요소에 의해 기형적인 운영 방식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최근 3년, 작가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어지는 걸음을 쉬지 않았다. 상패동 무연고 묘지에서는 생을 마감하고 번호로만 남은 여자들의 무덤을 보았다. 이름 없는 무덤들 가운데 윤금이 씨의 유해도 여기에 뿌려졌다고 했다. 수백 명의 무연고자가 잠들어있는 이곳에서 생장하며 번식하고 그 스스로가 시들어가기를 반복하는 식물들이 그 자리를 지켰다. 익명의 무덤들 위로 피어난 식물들이 소리를 질러댔다. 들리지 않는 비명과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빛이 공간을 비췄다. 미군 기지주변의 마을은 잦은 빈도로 뜨고 내리길 반복하는 전투기의 소리로 가득했다. 거주민에게는 기지 증축을 위하여 강제 이주가 강행되었다. 거주민이 떠난 자리에 미군을 위한 렌트 하우스가 지어졌고, 이 곳은 새 주인을 기다린다. 여러 시설들이 주민들의 고향 위에 지어졌다. 빈 들은 간혹 농사를 짓는 몇 안 되는 주민이 보살폈고, 강가에는 낚시하는 미군들이 있었다. 그리고, 미군 기지 구역임을 표시하며 그 너머의 접근을 금하는 안내판과 막다른 길을 몇 번이고 마주했다.

 흔한 풍경과 낯선 장면이 교차했다. 고요한 낮이면 짐짓 평범해 보일 수 있는 골목에서부터 감시와 경고의 문구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소리에 둘러싸이기도 했다. 순간을 기록한 사진들은 극적으로 묘사되거나, 작가 특유의 색온도가 담긴 서사적 이미지가 되어 전시장에 놓였다. 좌푯값으로 기록된 현장의 소리를 녹음하여 뜨고 지는 시간이 담긴 사운드 작업은 개별의 헤드셋에서 흘러나와 전시장의 바닥과 벽면을 타고 웅성거린다. 이는 여전히 그곳에 있는, 그러나 부재한 사람들의 목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전시 《깊은 낮과 밝은 밤(Field without spring)》에는 최요한이 보고, 듣고, 남긴 것을 담았다. 여기에는 움직이고 멈춘 사진과 소리가 있다. 최요한의 작업은 시대가 지나쳐 온 사람들과 장소, 순간을 기록하고 호명한다. 때로는 이름을 불러주는 것 만이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는 일들이 있다. 호명은 존재를 기록하는 가장 기본적인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어지는 다음의 응답을 기다리며 지금, 여기에서 부른다.

….
나는 수없이 많은 쓰레기를 밟으며 건물 안을 서성였다. 
흔적을 찾아보겠다고 와봤지만, 그 어떠한 것도 찾을 수 없었다. 
멍하게 몇 개의 방을 눈으로 더듬었다.
바람이 불었고 이곳저곳에서 풀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더불어 무너진 천장에 매달린 전등이 내는 기묘한 소리도. 
‘몽키 하우스’라는 이 공간은 불청객을 뱉어내고 싶었나 보다. 
나오는 길에는 초소에서 동네 주민들의 음성이 들렸다.
….
거문돌 가는 길.
“맞아. 저 위야”
“저 위가 맞아요?”
“저 위로 올라가서 계속 쭉 가다 보면, 기지의 담벼락이 나와 거기서 더 올라가면 돼”
친절한 설명에도 때로는 찾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계곡에서 한 여성이 미군에게 살해를 당했었다.
당시 그 미군은 교묘하게 커다란 돌로 숨겨놓았다고 한다.
자신의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했는데, 그 친구의 신고로 이 사건이 밝혀졌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은 미군들이 시신을 은폐할까 봐 밤낮 교대로 시신 옆을 지켰다.
장소를 자세히 살피면 무엇이라도 찾으리라 생각했지만, 자세히 볼수록 계곡을 이루는 나무와 돌 그리고 물만 자세히 보였다. 계곡의 끝자락에는 맑은 물만 흘렀다. 
평화는 어디로 흐를까
….
과거의 의문과 어색함을 가지고 또다시 방문했다. 
….
걸어왔던 길을 돌아보니 캄캄한 어둠 속에서 간판이 켜져 있는 장면들은 극장의 조명 같았다.
나는 관련된 이름 없는 풍경들과 오브제들을 카메라에 마구마구 욱여 넣었다
….
늦은 오후 장소에 불이 하나씩 하나씩 켜졌다. 
작은 식당에서는 조그마하게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조금 더 걸으니 술집이 나왔고 공사하는 소리로 가득했다.
이 길로 들어온 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았지만, 철거 중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계속해서 길을 따라 걸었다. 동남아 인들을 지나쳤고 슈퍼 앞에서 담배를 피우시는 할머니를 지나쳤다. 미군으로 보이는 사람도 지나치자 막다른 길이 나타났다. 

- 최요한 작가 노트 중


안성은(성북구립미술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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